사랑의 동그라미를 그려요(관계 확장, 나, 입학 준비)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은 저희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 유치원 추천해 주신 책입니다. 브래드 몬태규 글, 그림에 크리스티 몬태규 그림, 서남희 옮김, 을파소에서 펴낸《사랑의 동그라미를 그려요》입니다. 40쪽짜리 얇은 그림책이 아이의 긴장과 두려움을 어떻게 달래주었는지, 한번 들어보세요.

관계 확장: 동그라미 하나가 품은 발달심리학
이 책의 핵심 구조는 단순합니다. 아이가 자기 발 주변에 작은 원을 그리고, 가족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면서 그 원이 지구 전체를 감쌀 만큼 커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그림 안에 발달심리학의 핵심 이론 하나가 통째로 들어 있습니다.
생태학적 체계이론(Ecological Systems Theory)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브론펜브레너(Urie Bronfenbrenner)가 1979년에 제시한 이 이론은, 아동발달이 개인을 중심으로 겹겹이 둘러싼 환경 체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아이는 혼자 자라는 게 아니라, 가족·또래·학교·지역사회·문화라는 층위가 겹쳐 있는 세계 안에서 함께 자란다는 뜻입니다. 책 속 동그라미가 나 → 가족 → 친구 → 이웃 → 세계 순서로 커지는 것은 이 이론을 그림으로 옮겨놓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교수님의 강의 슬라이드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됩니다.
제가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책이 관계 맺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회성을 기르는 5단계 같은 매뉴얼이 전혀 없습니다. 대신 동그라미가 커지는 장면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아이 스스로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비고츠키(Lev Vygotsky)가 사회문화이론(Sociocultural Theory)에서 강조한 지점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사회문화이론이란 인간의 고등정신기능, 즉 언어·문제해결·자기조절 같은 능력이 타인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한다는 관점입니다. 동그라미가 커질수록 아이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대상의 수가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인지와 정서가 함께 자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나'에서 시작하는 동그라미
이 책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 장면은 아이 혼자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작은 동그라미입니다. 세상과 관계를 맺을 때 나 자신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은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의 핵심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애착이론이란 존 볼비(John Bowlby)가 제시한 개념으로, 영유아기에 주 양육자와 형성된 안정적인 유대감이 이후 아이가 세상을 탐색하는 '안전기지(Secure Base)' 역할을 한다는 이론입니다. 안전기지란 아이가 낯선 환경 앞에서 불안해질 때 심리적으로 돌아올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을 뜻합니다. 이 기반이 흔들리면 아이는 새로운 관계 앞에서 더 쉽게 움츠러듭니다.
제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이 장면에서 꼭 덧붙인 말이 있었습니다. "원의 중심에는 네가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언제나 엄마 아빠가 있어." 아이가 동그라미를 넓혀 나가도, 가장 가까운 자리에는 가족이 있다는 확신을 먼저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학교라는 새 환경이 두려운 이유는 낯선 공간 자체보다, 익숙한 울타리를 벗어난다는 감각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책을 읽어준 다음 날, 아이와 함께 종이에 동그라미를 직접 그려보았습니다. 맨 안쪽 작은 원에는 아이 이름을 쓰고, 그 다음 원에는 가족 이름을, 그다음에는 유치원 친구들 이름을 채워나갔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자기 관계망을 확인한 아이가 "나 친구 많다"며 뿌듯해하던 표정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아이의 세계가 이미 꽤 넓었다는 사실을 아이 스스로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낯가림이 있는 아이라면 동그라미를 억지로 키우려는 압박보다, 동그라미가 '나'로부터 시작하고, 나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며, 엄마아빠는 너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애착이론의 관점에서도 안전기지가 탄탄해야 탐색이 가능합니다. 동그라미를 넓히는 것보다 중심을 단단히 하는 것이 먼저라는 이 책의 순서는, 발달심리학적으로도 옳습니다.
입학 준비: 이 책을 어떻게 활용했는가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 자체도 의미 있지만, 책 한 권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제가 직접 써보면서 효과가 있었던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책을 다 읽고 나서 A4 용지에 아이를 중심으로 원을 여러 겹 그리고, 각 원 안에 아이가 직접 이름이나 얼굴을 그려 넣게 했습니다. 추상적인 관계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자기 관계망을 실감하게 됩니다.
- "이 동그라미 안에 더 넣고 싶은 사람이 있어?"라는 질문으로 아이가 스스로 관계를 넓히고 싶은 대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학교 가면 새 친구들이 들어올 자리가 여기 있어"라는 식으로 이어지면서, 입학이 두려운 사건이 아니라 동그라미가 커지는 기회로 프레이밍(Framing)되었습니다. 프레이밍이란 같은 사건을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정 반응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 책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나와 다른 사람도 동그라미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했습니다. 학교에는 나와 생각이 다른 친구도, 좋아하는 것이 다른 친구도 있을 텐데, 그 다름을 인정하면서 동그라미를 겹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 주습니다.
관계 맺기를 포용의 문제로만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단순히 내 동그라미 안에 포함시키는 것과, 내 동그라미와 상대방의 동그라미를 겹치게 하는 것은 다릅니다. 전자는 일방적이고, 후자는 쌍방향입니다. 공통점이 있으면 그 교집합에서 함께하고, 다른 점은 다른 점대로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관계를 맺는 것이 더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 방향을 직접 가르치지 않지만, 부모가 읽어주는 방식에 따라 충분히 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발달심리학적 배경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서 '생태학적 체계이론'이나 '애착이론'을 검색해 보시면 국내 아동발달 연구들을 더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그림책과 사회정서발달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누리과정 공식 포털에서도 관련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 아이는 책을 다 읽고 나서 저를 꼭 껴안으며 "엄마를 제 동그라미에 넣어줄게요"라고 했습니다. 책이 의도한 메시지가 그대로 전달된 순간이었고, 그 말 한마디로 이 책의 값어치는 충분했습니다.
큰아이는 지금 초등학교에 잘 적응해 다니고 있습니다. 아이가 적응하기까지 이 책 한 권 만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입학 전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동그라미를 넓히는 일'이라는 언어를 먼저 갖게 해 준 것은 분명 도움이 되었습니다. 환경 변화를 앞둔 아이에게는 설명보다 언어가 필요하고, 언어보다 이미지가 먼저 닿습니다. 그 역할을 이 책이 해 주습니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거나,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혹은 전학처럼 새로운 관계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아이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 참고:- 레프 비고츠키, Mind in Society, 1978.
- 브론펜브레너, The Ecology of Human Development, 1979.
- 존 보울비, Attachment and Loss Vol. 1,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