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과 아이 발달(언어 발달, 사고력, 정서 발달)
요즘 문해력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책 읽기가 이슈화되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읽어주어 어휘력을 키우고 독서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저도 아이의 문해력, 어휘력을 위해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림책을 읽어줄수록 어른인 저에게도 마음에 울림이 있었고, 관련 공부를 해보니 그림책이 아이의 성장 발달에 주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저의 경험과 학습한 교육이론을 바탕으로 그림책이 아이의 성장 발달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림책이 언어 발달에 미치는 영향
저희 아이는 미요시 아이의 '꿈이 왔어요'를 읽고 나서 "말캉말캉"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었는지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이 단어를 유독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풍선도 말캉말캉, 이불도 말캉말캉. 저희 아이의 이런 반응이 바로 어휘 습득(vocabulary acquisition)의 전형적인 과정입니다. 어휘 습득이란 단어의 발음과 의미를 연결하고, 그것을 자신의 맥락 안에서 반복 사용하며 언어로 내면화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림책을 읽다 보면 아이가 처음 듣는 단어에서 멈추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엄마, 이게 무슨 말이야?" 이 질문이 나올 때마다 저는 속으로 반가웠습니다. 모르는 것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이렇게 질문하고 설명을 듣고 다시 문맥 안에서 이해하는 흐름이 쌓이면서 아이의 어휘 폭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Nicholas Dowdall 등이 연구에도 마찬가지 설명을 합니다. 19개의 무작위 대조 연구를 분석한 메타분석 결과, 그림책 공유 읽기(book-sharing)가 표현언어와 수용언어 발달 모두에 유의미한 효과를 보인다고 보고되었습니다. 표현언어(expressive language)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과 문장으로 나타내는 능력을 말하고, 수용언어(receptive language)란 타인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그림책을 통해 표현언어, 수용언어 두 가지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는 것입니다(출처: PubMed — Dowdall et al., 2020).
그림책과 사고력
'내 모자 보았니'를 읽을 때에는 책장을 넘기기 전에 제가 잠깐 멈추고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네가 모자를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찾을 것 같아?" 아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경찰아저씨한테 물어볼 것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정답이든 아니든 아이 스스로 이야기 속 상황을 자기 현실로 끌어들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기특했습니다.
이런 경험이 왜 중요한지는 발달심리학 이론으로도 설명이 됩니다. 교육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Lev Vygotsky)는 아이의 발달이 혼자가 아니라 성인이나 또래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말한 근접발달영역(ZPD, 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이란 아이가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렵지만, 적절한 도움이 있으면 해낼 수 있는 범위를 가리킵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부모가 질문을 던지고 함께 생각하는 과정이 바로 이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학습입니다.
그림책이 사고력을 키우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 원인과 결과 파악: 등장인물의 행동이 왜 일어났는지 이유를 추론하면서 인과적 사고가 자랍니다.
- 예측과 추론: 책장을 넘기기 전에 "다음에 어떻게 될 것 같아?"라고 물으면 아이는 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 시각 정보와 언어 정보의 통합: 그림 속 표정이나 배경을 글과 연결해 해석하는 과정에서 복합적 사고가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곰이 웃고 있는데 혼자 앉아 있다면, 그 이유를 그림과 글에서 동시에 찾아야 합니다.
그림체가 이야기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영향을 준다는 것도 그림책의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작가마다 그림 스타일이 다르고, 그 그림이 전달하는 분위기와 감정의 결이 달라서, 같은 주제라도 그림에 따라 아이의 반응이 달랐습니다. 글 없이 그림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책을 함께 보면서 "이 장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아?"라고 물으면 아이가 그림에서 단서를 찾아 스스로 이야기를 구성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 자체가 추론 능력을 키우는 경험이었습니다.
공감 능력과 정서 발달을 돕는 대화식 읽기
'나의 특별한 도시락'을 읽으면서, 아이에게 "버스 안에서 친구와 함께 앉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을 때 준의 마음이 어땠을까?"라고 물었더니 "슬펐을 것 같아. 속상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 저는 아이가 타인의 내면을 상상하는 연습을 하고 있고, 이것이 공감 능력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래'에서도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이가 "자부루는 모두 달라. 그런데 달라도 괜찮아"라고 말했습니다. 이야기에 집중하고 공감하면서 스스로 다양성에 대해 알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아이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감각이 자라는 것 같았습니다.
정서 발달 측면에서는 '나는 오늘도 감정식당에 가요'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책 내용 자체에 여러가지 감정이 나오는데, 감정을 음식으로 표현하며 이 감정은 어떤 느낌인지 음식에 비유해서 표현해 주어 감정에 대해 더 세세하게 느낄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때로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음식을 통해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 책뿐만 아니라 '감정 호텔' 등 감정에 대한 그림책이 많습니다. 어린아이일수록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는 데 쓸 말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책을 통해 감정의 종류에 대해 직접적으로 배우기도 하고, 감정을 다룬 책이 아니어도 그림책 속 인물이 느끼는 슬픔, 두려움, 기쁨, 자부심을 보면서 그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는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을 읽어줄 때 대화식 읽기(Dialogic Reading)를 하는 것이 아이의 성정 발달에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 대화식 읽기란 책을 읽으면서 부모가 일방적으로 읽어주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고 아이의 반응에 반응하며 상호작용하는 읽기 방식을 뜻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단순히 읽어주는 것보다 질문하고 답변하는 대화식 읽기가 언어 발달과 정서 발달 모두에서 더 높은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ERIC — Towson et al., 2017). 저희 아이도 저와 충분히 대화하며 읽은 책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하고, 느낀 점도 더 다양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면 아이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또 언어발달, 정서발달, 사회성 발달 등 특정 영역에 도움이 되는 그림책을 찾고 싶지만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될 때도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그림책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 이론과 발달심리 관점에서 아이의 성장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살펴봅니다. 또한 그림책을 읽어줄 때 아이와 나눌 수 있는 질문, 독서 후 대화 방법, 그리고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독후활동도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두 아이를 키우며 그림책을 읽어주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의 글들이 부모님과 아이의 그림책 읽기 시간을 조금 더 풍성하고 따뜻해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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