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도시락(이민, 소속감, 다문화 감수성)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은 2025년 칼데콧 아너상을 받은 체리 모의 그림책 『나의 특별한 도시락』입니다. 지난 포스팅 "그림책 연령별 권장도서(서울시교육청, 2025년 겨울방학, 유아)"에도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저는 이 책 표지만 보았을 때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마음의 울림이 있었습니다.
이민 간 아이에게 닥친 하루
홍콩에서 살던 준이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갑니다. 하지만 준이가 아는 영어 단어는 "안녕", "고마워", "몰라" 이 세 단어뿐이었죠. 의사소통도 제대로 할 수 없는데, 홀로 낯선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아이를 상상하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좀 쿵거립니다. 어른인 저도 낯선 환경에 놓이면 긴장하고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하게 되는데, 언어조차 닿지 않는 교실에 앉은 아이는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이 책은 도시락을 매개로 낯선 세계에 홀로 던져진 아이의 이야기를 다정하고 조용하게 풀어내 줍니다.
작가 체리 모는 실제로 홍콩에서 자라 열 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그 경험을 고스란히 준이에게 담아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어설픈 위로나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이 없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친구 하나 생기지 않는 점심시간의 고요함, 매일 집으로 돌아올 때 느끼는 외로움이 그림 안에 그냥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이런 감정은 발달심리학에서 문화적응 스트레스(acculturative stress)라고 부릅니다. 문화적응 스트레스란 새로운 문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긴장과 불안 상태를 뜻합니다. 이민 가정 아동에게 흔히 나타나지만, 전학이나 어린이집 첫 등원처럼 낯선 환경에 처음 놓이는 모든 아이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비슷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거창한 이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아이가 새 학기 첫날 느끼는 그 감정들과 같습니다.
도시락 한 칸에 담긴 소속감의 의미
책을 읽으면서 제가 가장 오래 머문 장면은 준이 도시락을 여는 순간이었습니다. 주변 친구들과 전혀 다른 음식이 들어있는 도시락 앞에서 준은 열등감이나 부끄러움 대신 고향의 냄새와 엄마의 사랑을 떠올립니다. 어린 아이에게 쉬운 일이 아닌데, 준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결국 집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그 안정감이 준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리학에서 소속감(sense of belong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소속감이란 특정 집단이나 장소, 관계 안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뜻합니다. 아직 학교에서 그 소속감을 찾지 못한 준에게, 도시락은 "엄마가 기억하는 나"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도시락이 뜻밖의 방식으로 친구와의 연결 고리가 됩니다.
저도 아이와 책을 읽은 뒤 "너는 낯설었던 때가 있었어?"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새로운 유치원에 갔을 때"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낯설 때 어떻게 했어? 친구는 어떻게 사귀었어?" 하고 물으니, 조금 고민하다가 "병원 놀이 같이 할래? 하고 물어봤어. 그리고 좋다고 하는 친구랑 같이 놀았어"라고 답해주었습니다. 아이도 그 낯선 환경에서의 긴장감을 이겨낸 경험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책의 내용을 훨씬 가깝게 다가가게 해 주었습니다.
준의 부모님도 그런 마음으로 도시락을 쌌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 한마디 못 해주는 상황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이, 바로 매일 아침 정성껏 싼 도시락이었을 것입니다.
다문화 감수성, 그림책으로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두 번째로 오래 인상 깊었던 장면은 준의 도시락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눈길이었습니다. 경계나 거부가 아니라 순수한 궁금증이었습니다. 그중 한 아이의 시선이 준과 연결되어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장면에서 "다르다는 건 이상한 게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글보다 훨씬 조용하고 깊게 전달합니다.
다문화 감수성(multicultural sensitivity)이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와 능력을 뜻합니다. 단순히 "다른 나라 음식도 맛있을 수 있어"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저 친구가 왜 저런 도시락을 먹는지", "저 친구는 지금 어떤 기분일지"를 궁금해하는 마음이 다문화 감수성의 출발점입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다문화 교육 활동이 유아의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과 다문화 인식에 유의미한 효과를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친사회적 행동이란 타인을 돕거나 배려하고 협력하는 자발적 행동을 뜻합니다. 직접적인 교육보다 이야기를 통해 감정을 먼저 경험할 때 아이들의 변화가 더 자연스럽고 지속적이라는 것이지요.(출처: 윤정오, 이하원, 2018, 교육논총)
앞으로 우리 사회는 더욱 다문화 사회화될 것인데, 이 책을 통해 우리 아이가 그 문화가 다른 친구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 혹은 우리 아이 자신이 그 자리에 있다면 어떤 마음일지를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느낀 점
이 책을 읽고 나서 제가 부모로서 드는 생각은, 만약 우리 아이가 낯선 나라에 가게 된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네가 낯선 나라에 가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었을 때, 아이는 "많이 긴장될 것 같아. 슬플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렇죠. 아이는 얼마나 긴장되고 걱정이 될까요. 긴장할 아이를 위해 준의 엄마는 온 정성과 사랑을 담아 도시락을 싸주었을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저는, 아이를 사랑으로 안아주고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지켜준다면 아이는 어떤 뜻밖의 상황을 통해서든 적응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준에게는 엄마의 사랑과 고향의 기억이 담긴 도시락을 계기로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그 도시락이 준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주었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라나면서 언제 어디서든 낯선 환경에 놓이고, 그 낯섦을 해결하고 적응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아이가 흔들리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무리 정리
《나의 특별한 도시락》은 이민도, 언어 장벽도, 다문화도 거창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도시락이라는 따뜻한 소재로 다정하게 풀어내 줍니다. 그리고 다르다는 것이 연결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알려주고, 부모로서 우리 아이에게 더 따뜻한 시선으로 사랑해 주도록 격려해 주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아이와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관련 독후활동지를 첨부하오니, 관심 있으신 분은 다운로드하여 사용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