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는 민들레(나다움, 자기존중)
저는 아이들이 읽을 책을 저 혼자 도서관에 가서 제목만 보고 빌려올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가서 책을 읽다가 아이들이 고르는 책을 빌려오기도 하지만 평일에는 저 혼자 가서 빌려오곤 하지요. 오늘 리뷰할 김장성, 오현경 작가님의『민들레는 민들레』도 책 제목만 보고 빌려온 책이었습니다. 과연 유치원생, 초등학교 저학년 저희 아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요?
아이가 저에게 추천해 준 책 - 나다움
어른들이 보기에는 이 책 제목만 보아도 어떤 내용인지 대충 감이 오시지요? 맞습니다. 이 책의 주제는 '나다움'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빌려왔고, 책꽂이에 다른 책들과 함께 가지런히 꽂아놓았습니다.
그런데 저희 첫째가 "엄마, 이 책 좋다. 엄마도 읽어봤으면 좋겠어. 추천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책의 메시지를 잘 읽었는지 궁금하여 둘째와 함께 다시 한번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 아이들에게 "어떤 내용인 것 같아?"라고 물으니, "으응, 어디에 피어나든 민들레는 민들레라는 이야기 같아. 틈새에서 피어나도 예쁜 민들레야. 민들레 꽃이 지고 나서 씨앗일 때도 민들레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책은 이야기가 없고 글도 많지 않지만, 반복해서 말해 주는 '민들레는 민들레'가 아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스팔트 틈새에서든, 지붕에서든, 여기저기 피어있는 민들레는 보며 아이가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백이 주는 힘이 강한 책이었습니다.
자기존중과 나다움
출판사는 책 소개로 "민들레는 흔하고 가까우면서도 예쁩니다. 게다가 피고 지고 다시 싹 틔우는 생명의 순환을 거의 동시에 다 보여줍니다. 그래선지 어린 독자들에게 민들레의 한살이를 보여주는 생태 그림책이 적지 않습니다. 이 책도 민들레의 한살이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민들레가 온몸으로 전하는 또 다른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주기를 소망합니다. 다움의 이야기, 자기존중의 이야기, 그래서 저마다 꿋꿋하자는 이야기."라고 소개합니다.
출판사의 책 소개처럼 민들레가 싹이 터서 홀씨를 티울때까지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민들레 특유의 강함도 함께 보여주지요.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니까요. 역시나 '민들레는 민들레'였던 것이지요. 민들레 특유의 강인함과 동시에 혼자 피어도, 함께 피어도 민들레는 민들레라고 말해줍니다.
이를 통해 저희 아이들이 느낀점으로 말해주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자기존중감, 자율성, 회복탄력성을 심어줄 수 있는 책입니다.
자기존중감이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내면의 감각을 뜻합니다.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아이가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 애쓸 때 이 감각이 흔들린다고 보았습니다. 민들레가 아스팔트 위에 피어나면서도 "나는 들판이 아니라서 꽃을 못 피워"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조건 없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때 아이의 자기존중감이 자란다는 뜻입니다.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gard)이란 어떤 조건 없이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태도를 말하는데, 이 책을 읽어주는 행위 자체가 그런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Deci와 Ryan의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기본 심리 욕구가 있습니다. 자율성이란 외부 압력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난 동기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민들레가 주변 환경과 무관하게 민들레 본연의 모습으로 피어나는 모습이 이 자율성의 시각적 은유가 됩니다.
그리고, 회복탄력성이란 역경이나 어려움을 겪은 뒤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오거나 더 단단해지는 심리적 힘을 뜻합니다. 민들레는 가을에 지고 씨앗이 흩어져도 봄에 다시 싹을 틔웁니다. 그 반복 자체가 아이들에게 "나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합니다. Seligman의 긍정심리학 관점에서도 이런 내러티브가 아이의 심리적 강인함 형성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다고 봅니다. 미국심리학회(APA)에서도 회복탄력성(APA Resilience 자료)을 어린 시절부터 키워야 할 핵심 자질로 강조합니다.
이 세 가지 개념이 이 책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자기존중감(self-esteem): 비교하지 않아도 나는 나다. 지붕 위 민들레도 들판 민들레도 똑같이 민들레다.
- 자율성(autonomy): 어디에 떨어지든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꽃을 피운다. 외부 환경이 정체성을 바꾸지 않는다.
- 회복탄력성(resilience): 지고 흩어져도 다시 싹튼다. 쓰러짐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생명의 언어로 보여준다.
내지에서도 발견한 이 책의 메시지
책 표지만 넘기면 나오는 면이 있는데, 이 곳을 '내지'라고 부릅니다. 그림이 있기도 하고, 그림 없이 색깔로만 채워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앞표지와 뒤표지의 내지가 다른 책도 있지요. 그림책의 내지에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숨은 메시지와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의 내지에는 다양한 얼굴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모두 다 다르게 생겼고, 모두 다 표정이 다릅니다. 웃고 있는 친구도 있고, 무표정인 친구도 있고, 혀를 내밀고 메롱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마다 각자 다른 '나'이지요. 게다가 아이들 얼굴은 예쁘게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연필로 쓱쓱쓱. 색칠도 안되어 있어요. 예쁘게 그려져 있지 않지만 저마다 '나'입니다. 이 아이들이 커가면서 저마다에게 맞는 색깔을 칠할 테지요. 그리고 책 뒷면 내지에는 민들레가 그려져 있습니다. 모습은 다 다르지만, 모두 민들레입니다. 이처럼 이 책은 내지를 통해서도 메시지를 전달해 줍니다. 모두 다 모습은 다르지만, '나'입니다. 나다움을 인식하고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가꿔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아이와 다시 한번 책을 넘기면서 싹일 때, 꽃을 피웠을 때, 꽃이 졌을 때, 홀씨일 때도 민들레인지, 깨진 컵에 있을 때도 민들레인지, 혼자 있을 때, 여럿이 함께 있을 때도 민들레인지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야, 네가 잘하든 못하든 너는 소중한 엄마의 아들딸이야. 네가 키가 크든 작든 사랑스러운 엄마 아들딸이야. 네가 웃고 있든 울고 있든 엄마가 안아주고 싶은 아들딸이야. 그러니 너도 너를 사랑하렴." 하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는 저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책을 읽어주는 저도, 아이도 마음이 가득 채워진 시간이었습니다. 짧지만 마음 따뜻한 이 책을 추천합니다.
책을 읽은 후에 '민들레' 대신 아이 이름을 붙여 '○○이는 ○○', '울어도 ○○', '실수해도 ○○'라고 이름 넣어보기를 해주어도 아이가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 Deci, E. L., amp; Ryan, R. M. (1985). Intrinsic Motivation and Self-Determination in Human Behavior. New York: Plenum.
- Richard M. Ryan and Edward L. Deci(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 Seligman, M. E. P. (2011). Flourish: A Visionary New Understanding of Happiness and Well-being. New York: Free Press.
- Rogers, C. R. (1951). Client-Centered Therapy: Its Current Practice, Implications and Theory. Houghton Miffl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