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왔어요(수면불안, 상상력, 주도성)

저희 아이 4~8살 무렵에는 낮에 속상한 일이 있었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무서운 생각이 나서 못 자겠어"라며 잠에 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아이에게 "엄마가 꿈에 찾아가서 꼭 안아줄게. 구름 타고 같이 여행 다니다가 구름 솜사탕도 뜯어먹자."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럼 아이는 안심하며 제 손을 꼭 잡고 잠이 들곤 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이렇게 아이가 잠에 들기 어려워할 때 읽어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요시 아이_꿈이 왔어요

잠자리 수면불안, 어디서 오는 걸까

4~8세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무서워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이 시기는 상상력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인 동시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아직 완전히 구분하지 못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낮에 받은 스트레스나 감정이 소화되지 않은 채 잠자리까지 따라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 아이들도 그랬습니다. 유치원에서 친구와 다툰 날, 발표를 잘 못한 날, 심지어 초등학교 저학년이 됐을 때도 마음이 무거운 날이면 어김없이 잠이 잘 안 온다고 하였습니다. 단순히 잠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각성 상태라는 것을 나중에야 이해했습니다. 정서적 각성(emotional arousal)이란 어떤 감정 자극으로 인해 심신이 흥분되거나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눈을 감아도 뇌가 쉬지 않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눈 감아, 자야 해"라고 말하기만 하는 것은 거의 효과가 없습니다. 제 경험상 그 말은 오히려 아이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저희 아이는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할 때가 스르르 잠에 들기 좋았는데, 엄마가 이야기하지 말고 잠에 들라고 할 때는 오히려 무서운 생각도 들고 해서 잠에 들기 어려웠다고 하였습니다. 필요한 것은 명령이 아니라 전환이었습니다. 무서운 생각 대신 채워 넣을 수 있는 즐거운 상상의 씨앗 하나. 『꿈이 왔어요』는 바로 그 씨앗 역할을 합니다.

미요시 아이가 쓰고 그린 이 그림책은 "그림책 연령별 권장도서(서울시교육청, 2025년 겨울방학, 유아)"편에서도 소개해 드린 책입니다. 잠든 아이들 곁으로 꿈이 하나둘 찾아옵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꿈, 밤하늘 젤리를 먹는 꿈, 엄마가 여러 명이 되는 꿈, 고양이랑 함께 목욕탕에 가는 꿈……. 신기한 탈것에 올라타기도 하고, 동글동글 공처럼 굴러가기도 합니다. 꿈들이 모여 축제를 열고, 아침이 오면 살금살금 제자리로 돌아가며 내일 밤을 기약하는 내용입니다.

환상 그림책이 상상력에 미치는 영향

《꿈이 왔어요》에 등장하는 꿈들은 철저하게 비현실적입니다. 밤하늘 젤리를 먹고, 엄마가 여러 명이 되고, 고양이와 목욕탕에 갑니다. 이 설정이 말도 안 된다고 느껴지는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이 장면들에 눈을 반짝입니다. 저희 아니는 "나도 저런 꿈꾸고 싶다!"라며 재미있어 했습니다.

이런 유형의 책을 환상 그림책(fantasy picture book)이라고 합니다. 현실의 법칙이 아닌 상상의 논리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림책을 뜻합니다. 환상 그림책은 아이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바람이나 감정을 안전하게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심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정서 교육 프로그램이 유아의 자기정서인식, 타인정서인식, 감정이입, 정서표현, 정서조절 모든 영역에서 유의미한 향상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오영희, 유아교육연구 2004).

저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아이들과 잠자리에서 꿈 이야기를 만들어왔는데, 직접 해보니 아이가 대화하면서 긴장이 풀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구름이 솜사탕으로 변하면 어떤 맛일 것 같아?" 하고 물으면 아이는 어느새 무서운 생각 대신 즐겁게 솜사탕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이 책이 그 대화의 시작점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의성어와 의태어가 가득하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부웅부웅, 몽실몽실, 피융피융, 쫄깃쫄깃, 말캉말캉. 이 단어들을 소리 내어 읽는 행위 자체가 음운 인식(phonological awareness)을 자극합니다. 음운 인식이란 언어의 소리 구조를 인식하고 조작하는 능력으로, 읽기 발달과 언어 표현력의 기초가 됩니다. 그림책을 활용한 신체표현활동이 유아의 언어 표현력을 유의미하게 향상시킨다는 연구도 이 관점을 뒷받침합니다(출처: 정다운·엄정애, 유아교육학논집 2011).

에릭슨의 주도성 개념으로 읽는 이 그림책

발달심리학자 에릭슨(Erik Erikson)은 4~6세를 심리사회적 발달의 3단계로 정의했습니다. 이 시기의 핵심 과제는 주도성 대 죄책감(Initiative vs. Guilt)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에릭슨 발달단계 3~6세(주도성, 과정, 놀이)"에서 확인해 주세요.) 주도성(initiative)이란 스스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시도하려는 내적 충동을 말합니다. 이 시기 아이는 "내가 해볼래"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커집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 욕구가 자주 막힙니다. "안 돼", "위험해", "그건 하지 마". 이 말을 반복해서 들은 아이는 자신의 욕구와 충동 자체에 죄책감(guilt)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죄책감이란 자신의 행동이나 욕구 자체가 나쁜 것이라는 감각입니다. 주도성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면 아이는 자라면서 스스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 관점에서 이 책을 다시 보면, 꿈속에서는 아무도 "안 돼"라고 하지 않습니다. 고양이와 목욕탕에 가도 되고, 밤하늘 젤리를 뜯어먹어도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아이가 그 세계를 억지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냥 편안하게 누워 있으면 꿈이 찾아옵니다. 아이가 주도성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스스로 찾아오는 구조, 이것이 죄책감 없이 주도성을 경험하게 하는 이상적인 틀입니다.

부모가 이 책을 읽어주면서 "꿈속에서는 뭐든 해봐도 돼"라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아이의 주도성을 지지하는 양육 방식입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꿈 이야기를 만들어주던 것도 결국은 그 맥락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일수록 이 책의 효과가 더 큽니다. 엉뚱한 꿈 이름을 붙이고, 책에 없는 꿈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다음 날 아침 "어젯밤에 꿈꿨어!" 하고 먼저 달려옵니다. 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잠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옅어집니다.

마무리 정리

『꿈이 왔어요』는 잠들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잠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아이가 무서운 생각으로 눈을 못 감는 밤, 이 책 한 권이 그 공간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꿈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손님이라는 이 단순한 시각의 전환이, 아이의 밤을 바꿔줄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긴장을 풀고 무한 상상의 꿈 나래를 펼쳐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간밤에 어떤 꿈이 찾아왔는지 서로 이야기하며 지난 밤에 꾸었던 꿈을 그림그리기 하는 것도 재미있는 활동으로 추천드립니다. 

참고자료

오영희 (2004). 그림책을 활용한 유아 정서능력 향상 프로그램 개발 및 효과. 유아교육연구, 24(5), 269–289.
정다운, 엄정애 (2011). 그림책을 활용한 신체표현활동이 유아의 언어능력에 미치는 영향. 유아교육학논집, 15(4)
Erikson, E. H. (1963). Childhood and Society (2nd ed.). W. W. Norton & Company. — 국내 번역본: 에릭슨 저, 송제훈 역, 《유년기와 사회》, 연암서가, 2014.
하미숙 (2024). 에릭슨의 심리사회 발달단계로 분석한 동화 「겨자씨의 꿈」. KCI 등재 학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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