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꿈을 응원해, 권투 장갑(자신만의 꿈, 꿈 탐색)

유설화 작가님의 〈장갑 초등학교〉시리즈를 알고 계신가요? 서로 다른 쓰임새를 가진 장갑들을 어린이로 의인화해,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감정과 고민을 따뜻하게 풀어낸 그림책 시리즈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다르고, 모두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그 시리즈 중 이번에 소개해 드릴 책은 책읽는곰이 펴낸『네 꿈을 응원해, 권투 장갑!』입니다.
권투 장갑은 커서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권투 장갑의 꿈은 무엇일까요? 이번 시리즈는 아이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과 권투 장갑이 커서 무엇이 될지, 그럼 우리 아이들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유설화_네 꿈을 응원해, 권투 장갑

권투 장갑은 장래에 당연히 권투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장갑 친구들이 만들기를 하고 발표하는 날입니다. 그중 목장갑이 타임머신을 만들었는데 우연히 친구들 모두가 미래로 가게 됩니다. 각자 장래 희망대로 살고 있을까요? 궁금하진 장갑 친구들은 미래의 자신을 찾아봅니다. 어떤 친구들은 예상했던 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주방 장갑은 제빵사, 목장갑은 과학자가 된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때밀이 장갑, 레이스 장갑, 권투 장갑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커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여기까지 읽고 잠깐 멈추어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권투 장갑은 어른이 되면 뭘 하고 있을까?" 아이들은 주저 없이 답했습니다. 권투 선수, 격투기 챔피언. 당연한 거 아니냐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자 전혀 다른 모습이 나왔고, 아이들과 저 모두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우리는 흔히 'OO답게'라는 말로 가능성의 테두리를 그어 버립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답게', '남자답게'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쓰였습니다. 여성이 건설 현장에서 일하거나 격투기를 하면 어울리지 않는다 했고, 남성이 자수를 놓거나 아기자기한 소품을 만들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흉을 봤습니다. 이 책의 장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장갑은 목공일, 주방장갑은 요리, 권투 장갑은 격투기. 겉모습이 방향을 정해 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이 책은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편견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네가 그런 걸 한다고?"라고 아이들을 제한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를 알려줍니다.

자신만의 꿈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은 권투 장갑이 친구들에게 자신의 꿈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친구들은 권투 장갑이라면 당연히 복싱 세계 챔피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권투 장갑은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과는 다른, 자신만의 소박한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혹시 친구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 꿈을 조용히 숨기고 있었지요. 

이 장면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자주 묻지만, 때로는 아이의 대답보다 부모가 기대하는 답을 은연중에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꿈에는 크고 작은 것도, 더 멋진 것과 덜 멋진 것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의 기대에 맞춘 꿈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즐겁고 의미 있다고 느끼는 꿈입니다. 

교육부의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진로교육은 특정 직업을 빨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흥미와 강점, 가치관을 이해하며 삶을 스스로 설계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런 점에서 권투 장갑이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꿈을 표현하는 모습은, 아이들에게 "나답게 꿈꾸는 용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무엇이 되고 싶어?"라는 질문보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했어?"라는 질문을 아이와 함께 나눠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직업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힘을 조금씩 키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으로 바라본 권투 장갑

에릭슨(Erik H. Erikson)은 초등학생 시기를 '근면성 대 열등감(Industry vs. Inferiority)'의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강점을 발견하며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키워 갑니다. 반대로 친구들과의 비교나 주변의 기대에만 맞추려 하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열등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권투 장갑 역시 친구들이 당연히 복싱 세계 챔피언이 되었을 것이라 기대하는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꿈을 쉽게 드러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미래의 자신을 만나고 자신의 꿈을 긍정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기대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는 용기를 얻습니다. 이는 단순히 직업을 선택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흥미와 강점을 발견하고, 남과 비교하기보다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해 가는 경험은 에릭슨이 말한 근면성을 키우는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아이들의 꿈 탐색, 직접 나눠보니 이랬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저는 아이들에게 먼저 물었습니다. 만들기를 좋아하고 과학책을 좋아하는 큰아이는 과학자나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왜 그 꿈을 갖게 됐는지 물어보니 "우주에 가면 아무도 모르는 걸 내가 처음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참 마음에 남았습니다.

사뿐사뿐 춤추기를 좋아하는 작은아이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고 했다가, 잠깐 생각하더니 요리사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두 개를 동시에 하면 안 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럼, 당연히 돼"라고 대답했고, 아이는 그때 처음으로 활짝 웃었습니다. 아마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서로의 꿈을 듣고 "멋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그 장면이 이 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에 순위를 매기지 않고, 다른 꿈을 가진 서로를 응원하는 것. 이건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먼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기특했던 점은 서로의 꿈에 대해 "그게 말이 되냐"는 반응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른인 저는 작은 아이는 발레리나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큰아이는 편견 없이 응원해 주었던 것입니다.

꿈이 바뀌는 아이를 보며 불안했던 적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꺼내보시길 권합니다. 권투 장갑의 반전을 따라가다 보면, 아이의 꿈을 응원한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사실은 어른의 기준이 담긴 기대였음을 조용히 돌아보게 됩니다. 아이들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OO답게'라는 틀로 좁히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응원의 시작일 것입니다.

--- 참고: 
  • 교육부.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 교육부·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2). 2022 개정 진로와 직업 교육과정 시안 개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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