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래(자부루, 다양성, 함께 읽기)

그림책 한 권을 읽고 아이가 스스로 "혼자 있는 걸 좋아해도 이상한 건 아니네"라고 말했습니다. 콜롬비아 출신 작가 디파초의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래』를 읽은 후였습니다. 짧은 그림책이 아이에게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 준 것에 놀랐습니다.

디파초_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래 책 표지
자부루, 낯선 새 이름 뒤에 담긴 것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래』의 주인공은 자부루(Jabiru)라는 황새입니다. 자부루는 신대륙 최대 크기의 황새로, 남미 습지와 초원에 서식하는 실제 조류입니다. 디파초가 이 새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건 단순한 취향이 아닐 겁니다. 낯설지만 실존하는 생명, 크고 묵직하지만 조용히 살아가는 존재. 그 특성이 이 책의 메시지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책은 어떤 자부루는 혼자이고, 어떤 자부루는 함께 산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늘어놓습니다. 어떤 새는 같은 종끼리만 어울리고, 어떤 새는 다른 종과도 섞여 삽니다. 어떤 새는 먼저 세상을 떠나고, 어떤 새는 막 태어납니다. 판단도 없고 결론도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만 이야기합니다.

일반적으로 다양성을 주제로 한 그림책은 "우리는 모두 달라도 소중해요" 식의 교훈을 직접적으로 제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릅니다. 교훈을 말하는 대신, 그저 보여줍니다. 아이는 교훈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다 잊어버리지만, 스스로 발견한 것은 좀처럼 잊지 않았습니다.

책 말미에는 자부루에 대한 실제 생태 정보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야기가 끝난 뒤 자연스럽게 생물 다양성으로 관심이 이어지도록 구성한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읽고 나서 "자부루가 진짜 있는 새야?"라는 질문이 나왔고, 그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그림을 한참 바라본 이유 – 다양성 교육의 진짜 출발점

저희 아이는 혼자 날아가는 자부루 그림 앞에서 한동안 책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저 새는 혼자라서 슬픈 걸까?"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너는 어떻게 느껴졌어?"라고 되묻자,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근데 혼자 놀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괜찮을 수도 있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장면에서는 "우리 가족도 저 새들 같아"라며 책 속 장면을 자기 삶과 연결 지었습니다.

이 순간이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한 장면이었습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런 연결 경험을 자아 동일시(Identification)라고 부릅니다. 자아 동일시란 자신과 외부 대상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며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아이가 자부루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는 그 짧은 순간이 바로 그 과정입니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Psychosocial Development Theory)에 따르면, 유아기와 초등 저학년 시기는 "나는 괜찮은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는 경험이 핵심 발달 과제입니다.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이란 인간이 각 생애 단계에서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심리적 갈등을 해결하며 성장한다는 이론입니다.(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에릭슨 발달단계(아동심리, 양육법, 성장과업)에서 확인해 주세요.) 이 시기 아이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또래와 비교하는데, 이 책은 그 비교의 프레임 자체를 부드럽게 흔들어 놓습니다.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다"는 말을 직접 하지 않으면서도, 그림 한 장 한 장이 그 메시지를 조용히 심어줍니다.

아이가 책을 다 읽고 마지막으로 한 말은 "다 다른데 싸우지 않는 게 신기해"였습니다. 누군가 직접적으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야기해 준 것이 아닌데도 아이가 책을 읽고 다양성에 대해 느끼고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함께 읽기가 독서의 효과를 바꾼다 – 스캐폴딩의 실제

그림책 독서는 혼자 읽어도 좋지만, 부모와 함께 읽을 때 교육적 효과가 달라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발달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Lev Vygotsky)가 제시한 근접발달영역(ZPD, Zone of Proximal Development) 개념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근접발달영역이란 아이가 혼자서는 도달하기 어렵지만, 더 유능한 타자의 도움을 받으면 가닿을 수 있는 사고의 영역을 말합니다.

이 개념과 짝을 이루는 것이 스캐폴딩(Scaffolding)입니다. 스캐폴딩이란 건물을 지을 때 비계(발판)를 설치하듯, 어른이 적절한 질문과 반응으로 아이의 사고를 한 단계 높여주는 대화 방식을 뜻합니다.(스캐폴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근접 발달 영역과 스캐폴딩(ZPD, 비계설정,배운 점)에서 확인해 주세요.) 제가 아이에게 "저 새는 어떤 것 같아?", "우리 가족이랑 비슷한 새가 있어?"라고 물었을 때, 아이는 혼자 읽었다면 그냥 넘겼을 장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스캐폴딩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경험으로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스캐폴딩이 '질문을 많이 던지는 것'이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아이의 말을 끊지 않고 받아주는 시간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아이가 "저 새 슬픈 거야?"라고 물었을 때, 제가 바로 답을 줬다면 그걸로 끝났을 겁니다. "너는 어떻게 느꼈어?"라고 되물었기 때문에 아이의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아이와 함께 읽기를 계획하고 있다면 아래 질문들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질문들은 정답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할 공간을 열어주는 데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1. "이 새들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새가 있어? 왜 그 새가 마음에 들었을까?"
  2. "혼자 있는 새를 보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어?"
  3. "우리 가족이랑 비슷한 새가 있었어? 어떤 점이 비슷한 것 같아?"
  4. "모두 다른데, 왜 싸우지 않는 것 같아?"
  5. "네가 새라면 어떤 새가 되고 싶어? 그 이유는 뭐야?"

중요한 것은 아이의 대답이 어떻게 나오든, "그렇게 느꼈구나",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았구나" 하고 먼저 받아주는 태도입니다. 아이의 말을 해석하거나 교정하려 하면, 아이는 곧 '정답을 말해야 하는 시간'으로 독서를 인식하게 됩니다. 제 경험상 그렇게 되면 책 읽기 자체를 멀리하더라고요.

어떤 가족도 이상하지 않다 – 그림책이 사회에 던지는 질문

브론펜브레너(Urie Bronfenbrenner)의 생태학적 체계 이론(Ecological Systems Theory)은 아이의 발달이 가족이라는 미시체계(Microsystem)에서 출발해 사회·문화적 가치관인 거시체계(Macrosystem)까지 다층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생태학적 체계 이론이란 아이가 성장하는 데 있어 가정, 또래, 지역사회, 사회 전체가 서로 연결된 겹겹의 환경으로 작용한다는 이론입니다.(브론펜브레너 이론의 자세한 내용은 "브론펜브레너 이론(체계구조, 환경상호작용, 발달과정"에서 확인해 주세요)

이 관점에서 보면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래』는 단순한 그림책이 아닙니다. 한부모 가정, 조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 외동 가정, 다문화 가정 등 어떤 형태의 가족도 비정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아무런 설명 없이 그림으로 전합니다. 어떤 자부루는 가족이 있고, 어떤 자부루는 가족이 없습니다. 어떤 새는 무리에 속하고, 어떤 새는 혼자 삽니다. 그 어떤 경우도 그림 속에서 특별히 불쌍하거나 문제 있는 것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통계청 인구 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한부모 가구는 전체 가구의 약 10%에 달합니다(출처: 통계청).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접하는 친구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이른바 '표준 가족'의 형태가 아닌 가정에서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아이들에게 "우리 가족 모습도 괜찮아"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그림책이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가치 있는 일입니다.
(※ 이 책은 서울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가정의 달 권장도서(유아)로 관련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 주세요.)
서울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가정의 달 권장도서(유아)

참고자료

- Erikson, E. H. (1963). Childhood and Society. W. W. Norton & Company.
- Vygotsky, L. S. (1978). Mind in Society: The Development of Higher Psychological Processes. Harvard University Press.
- Bronfenbrenner, U. (1979). The Ecology of Human Development. Harvard University Press.
- 통계청 KOSIS 국가통계포털, 「인구총조사」 가구유형 통계(2023).
- Dipacho. Some Do, Some Don't. Milky Way Picture Books, 2024 / 도토리숲 한국어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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